오랜 역사 속에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증가시켰고, 개인의 생산성을 점차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 명의 기술공이 중세 시대의 거대한 길드를 능가하는 생산성을 갖게 되었고, 농민 한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의 평균 수명은 이미 50대를 예전에 넘기고 백 살이 되지 않으면 눈길조차 끌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가고 있지요.

  인구는 늘어나고 개인의 생산성은 점점 향상되어 갑니다. 당연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와 그 능력은 더욱 더 올라가게 마련이지요. 로봇 기술이나 자동화를 통해서 그 능력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미래는 과연 어찌될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는 상당히 암울한 것은 아닐까라고 간혹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한 두 명의 사람이 수십, 수 백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상황 때문에...

  아직 전 세계의 경제는 매우 큰 격차를 갖고 있으며, 시장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업이 꾸준히 늘어나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고, 국민 소득 역시 계속 늘어나지만, 실업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더욱 더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사회 보장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선진국일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국민 소득은 2만이니 3만이니 하는 수치를 가리키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격차는 너무도 커져만 갑니다. 과거에는 고작 10배, 100배에 불과하던 소득 편차가 심하면 100만배, 1억배까지 이르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요.(그리고 이것은 더욱 더 커져가기만 합니다.)

  소득의 증대로 인한 시장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시장의 다각화(특히 문화 등 소프트웨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증가. 여기에 게임 아이템 구매 등 이와 관련된 용돈 벌이 시장)는 실업과 함께 소득 편차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는 법입니다.

  물론, 문화가 발전하면서 인구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 자손에 대한 애착은 점차 줄어들고 자기 계발에 더욱 투자를 많이 하는 영향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줄어든 인구는 판매 시장이 줄어든다는 말도 되기 때문에, 결국 일자리 부족은 여전히 유지되겠지요.


  그렇게 되는 미래의 조망은,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성장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적성이나 특성 등을 체크하여 일자리를 가지기에 충분한지 아닌지 구별됩니다. 그 확률은 1/100 정도.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는 평생 일자리와는 멀어진 채 영원한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겠지요.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속칭 엘리트라는 코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에 적합한 교육을 받고 회사에 입사하여 일을 하게 되지요.(연구일수도 있고 영업일수도 있습니다.) 체계와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그의 생산성은 너무도 엄청나서 과거의 100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 수행합니다. 물론, 그는 그에 맞는 수입을 얻게 되지만, 그 중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두어진 세금은 국가의 여러 분야에 사용됩니다. 특히,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난 사회 보장 비용으로... 그는 사실상 다른 99명의 소득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당연히 그는 최고의 생활을 누립니다. 그가 낸 세금을 100% 사회 보장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해도 그는 나머지 99명의 수중에 있는 돈과 맞먹는 돈을 벌어들이는 상황에서, 국가의 다른 예산을 뺀 비용을 받게 되는 99명에 비하면 거의 100배, 200배의 수입을 벌어들이기 때문에 생활은 비교가 안 되겠지요.

  당연히 99명의 메이드를 고용하여 하나우쿄 메이드대를 만들건, 99명의 선수들을 고용하여 축구팀을 9개 만들어 대전시키건 그것은 그 마음대로 일 것입니다.

  남은 99명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받은 사회 보장 비용을 마음대로 쓰는 것 뿐입니다.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공짜로 얻은 돈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생활을 하고도 남을 만큼 큰 돈이니까요. 그들은 그 돈으로 1/100의 엘리트가 만든 물건을 구입하고, 1/100의 엘리트가 쓴 책을 읽으며, 1/100의 엘리트가 만든 게임을 즐기고, 1/100의 엘리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물론, 그 1/100의 엘리트들이 만든 축구팀의 경기를 관전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일을 하지 않고 얻은 돈이니만치, 그 돈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99/100의 사람들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 돈을 모아봐야 엘리트들이 벌어들이는 하루 일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평생토록 돈을 모으고 후손에게 물려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나 자식이 엘리트의 자리를 쟁취하도록 노력하는게 낫겠지요.)

  엘리트의 생활을 위하여 소비는 계속 조장됩니다. 99/100의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 연금 이상의 물건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서는 연금에서 할부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될 수 있도록 월 지불 한도는 존재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짧아도 80이상의 수명이 보장되는 이상, 50년에 걸쳐서 갚아나간다는 것도 존재하므로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부로 처리한 비용은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 전에 연금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만일 지나친 소비를 실시할 것 같으면 국가에서 개입하여 강제적으로 그것을 막습니다. 그들의 소득은 연금 뿐이고 국가에서 그것을 쥐고 있는 이상 신용불량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그가 예상보다 빨리 죽어도, 그가 받을 연금분에서 그 비용은 빠져나갑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를 담당하는 1/100의 엘리트의 세금에서 일부가 그 물건을 판매한 다른 1/100의 엘리트에게 넘어가겠지요. 물론, 그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철저한 사회 보장 제도 덕분으로, 의료 등으로 지나친 지출이 나올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게다가, 그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도 연금은 나오며, 그 연금 중 일부가 병원비로 자동 지출되겠지요.(이 병원 역시 1/100의 엘리트가 소유하고 운영할 것입니다.)

  사회는 1/100의 엘리트에 의해 운영되고, 심지어 선거 등으로 정치에 참여할 기회 역시 그들에게만 부여됩니다. 그들을 시민이라고 부르건, 아니면 부르조아라고 부르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없이 사회는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일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이상, 일하는 사람들에게 권리를 몰아주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1/100의 엘리트는 사회가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머지 99/100의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연금 등을 삭감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들에게 그나마 ‘사는 보람’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겠지요.(사회적인 인간은 무언가 일을 함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으며, 동시에 보람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온라인 사회에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그것들이 고가로 거래되도록 하거나, 온라인에서 가상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들은 접속 비용을 지불하고, 생활비 외에도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비를 할 것이므로 그들에게 지급한 연금은 거의 대부분 1/100의 엘리트에게 돌아옵니다.

  때때로 1/100의 엘리트 중 일부가, 아예 99/100의 사람들을 온라인 사회에 평생 처박아 매트릭스 같은 세계를 만들어 버리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자고 제안하곤 하지만, 인도주의적인 정신보다는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거부됩니다.

  1/100의 엘리트의 수입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들 99/100의 소비 활동이니까요.(온라인 하나 만으로는 소비 활동이 지나치게 적어서 엘리트의 생산 능력이 아까울 정도겠지요.)

  그런 와중에서도 사회는 발전하고 소득은 계속 증가됩니다. 99/100의 비엘리트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당연히 증가하고, 1/100의 엘리트의 소득은 그 이상으로 증가합니다.

  하지만, 만일 시장 규모가 생산성의 향상을 따라오지 못한다면, 엘리트의 비율은 조금 줄어듭니다. 1/100에서 1/101이 되고, 1/102....라는 식으로 1/1000, 1/10000, 1/100000 식으로 증가하게 되겠지요.

  최후에는 몇 안 되는 사람에 의해서 수많은 인류가 살아가는 삶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유 경제, 자본주의라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연금 제도의 통제 아래 평범하게 살아가고, 평범하게 소비하며, 평범하게 죽어갑니다. 전 인류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엘리트들은 높은 탑 위에서(혹은 다른 어딘가에서) 그런 사회를 개미굴처럼 바라보겠지요. 결국, 그들의 손아귀 안에 들어 있는 그런 사회를...


  물론, 낙관적인 관점에서 미래는 이처럼 처참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를 찾기 위해 떠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면, 생산성이 늘어나더라도 얼마 안 되는 엘리트에 의해서 세계의 경제가 돌아가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실업율과 수명,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추가되는 사회 보장 비용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접어 둘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요?(물론, 온라인 사회와 산업의 번창, 프로게이머 같은 신종 직책이나 그에 반해 줄어드는 정규직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99/100의 비엘리트들이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에서 들어오는 돈을 받으며 그야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만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온라인/오프라인 사회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해서 다른 비엘리트들에게 팔면 돈을 버는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그 돈도 결국은 소비를 거쳐 1/100의 엘리트에게 돌아가겠습니다만...)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예상 밖의 소질로 1/100의 엘리트들에게 인정받으면, 문화 업계의 엘리트로서 뛰어오를 수도 있습니다.(이런 분야의 재능은 사실, 교육이나 시험으로 간단히 구별하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들이 게임을 만들건, 그림을 그리건, 아니면 음반을 내거나 책을 쓰건 1/100의 엘리트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1/100도 못 벌어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똑같은 연금을 받는 99/100의 비엘리트들과는 다른 위치에 서 있으니까요.


p.s) 제 평소의 지론(미래는 더욱 좋아지겠지. 문제가 생겨도 기술로 회복할 수 있겠지.)과 다르다는 점에 신경쓰지 마시길... 이건 어디까지나 한가지 조망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앞으로 다채로운 조망을 쓸 예정이라는 것이지만... 과연...?) 과연 어떤 다른 미래의 모습이 존재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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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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