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geaters, Light The World.

05

2016-Aug

자연에 대하여

작성자: Blonix IP ADRESS: *.64.228.3 조회 수: 298

  자연이라는 단어 속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푸른 초원 또는 광활한 사막? 아니면 장엄한 산맥과 울창한 숲? 흐르는 계곡물과 하천,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하는 푸른 바다? 아마 추측컨대 그 누구도 자동차의 매캐한 매연과 각종 소음으로 가득한 도심지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고는 한다. 그런데 나는 질문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도시는 인위적이지만, 벌들이 만들어 낸 벌집은 자연적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다는 말인가?

 

  예로부터 동양에서 자연을 그린 풍경화에는 초가집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자그만하게나마 들어가고는 했었다. 그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시작된 산업사회의 문명은 인간 이외의 모든 것들을 이용 가능한 도구와 자연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로써 인간,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 즉 자연으로 구분지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별법에는 분명히 오류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실제로 사람들이 자연을 논할 때, ‘인간의 손길이 묻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들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강아지와 함께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뒹구는 어린아이를 보라. 그것이 자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울창한 숲, 어떤 나무에 나무꾼의 실수로 생긴 작은 흠집을 보라. 그것이 자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산불로 황폐해진 산에 오랜 기간 나무를 심어 복원한 산림을 보라. 그것이 자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우리가 자연을 판단함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자연이 가진 어떤 속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야성이라 표현해도 좋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연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까지도 자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설령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에 의해 복원된 산림이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안에서 야성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순수함이 곧 자연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말하는 자연의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일단 물질적인 청결을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 누구도 자연 그대로 벌레가 우글거리는 정글의 늪지대에서 헤엄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무엇인가? 잠시 방금 전의 예시를 다시 곱씹어보자. 우리가 정글의 늪지대에서 헤엄치고 싶어 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물질적으로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옷과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걱정하며, 늪지의 벌레들에게 쏘이지는 않을지, 병균과 기생충은 없을지, 혐오스러운 냄새가 몸에 배이지는 않을지를 걱정한다. 어쩌면 그러한 걱정들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순수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순수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야생의 늪지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며 일체의 걱정 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이 가진 순수함이다.

 

  그런데 이대로 놔두기에는 여전히 애매한 느낌이다. 어째서 우리 인간은 순수하지 못한가, 그리고 어째서 인간은 자연의 순수함을 동경하고 자연과 하나 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우선 인간이 왜 순수하지 못한지를 따져보기 위해,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생명체인 동물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감각적으로는 느껴지지만 정작 하나씩 따져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동물이게만 또는 인간에게만 있는 속성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동물 역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이용하고, 먹이를 저장하고, 자식을 교육하며, 사회를 이루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차이점은 있다. 인간이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만든 차이점. 나는 그것을 자아정체성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나’라는 객체를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정의 내린다. 그것이 바로 자아정체성이다. 일부 몇몇 사람들이 동물에게 역시 자아정체성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자아정체성이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믿는다.(정확히는 유아기를 거치며 형성된다.) 자아정체성의 존재가 가져오는 여러 특징들이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자신을 세계로부터 분리시켰기에 ‘나’를 새로이 정의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이 정의 내려진 ‘나’는 나 자신이 믿는 여러 가치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누구의 친한 친구이고, 어떠한 집단의 일원이며, 이러한 생각을 갖고, 이런저런 취미와 특기를 가진 인간이다.” 라고 정의내리는 것이다. 이 자아정체성은 삶의 과정마다 조금씩 수정되고는 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정의들에 포함된 개별 가치들이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점이다.

 

  동물들에게 있어 본능은 일차원적으로 적용된다. 동물들에게는 자신이 곧 세계이고 세계가 곧 자신이다.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 없기에, 그들 자신이 살아남고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들에게는 다르다. 인간에게 있어 ‘나’라는 것은 내가 믿는 가치들의 집합이므로, 본능은 그러한 가치들까지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세계와 분리되었고, 자연과 분리되었으며,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자연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세계와 하나 된 순수한 정신에게는 삶과 죽음, 자신이 누구인지와 같은 일체의 철학적 질문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세계를 떠나온 객체로서, 우리는 끝없이 ‘나’를 찾아다니며 질문하고 고뇌한다.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고정된 기준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명확한 ‘나’를 정의내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삶을 쉼 없이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가버린다. 기준은 변화하고, ‘나’는 흔들린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게 되었으며,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또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불안해진다. ‘나’를 잃는다는 것이 죽음과 동일한 수준의 본능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우리가 떠나온 고향, 자연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변하지 않는 안정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자연이 되며, 자연이 곧 내가 된다. 자연이 흘러가는 법칙대로 함께 흘러간다. 걱정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을 동경한다. 많은 이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해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떠나온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 온 모든 ‘나’를 죽여야만 하므로, 만일 자연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현재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아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기준점을 확보해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각자의 방법만이 존재할 뿐,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하고 고뇌하는 자세. 그것이 자연을 떠나온 인간으로서의 역할이자, 책임이고,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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