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geaters, Light The World.

04

2016-Nov

비관주의에 대하여

작성자: Blonix IP ADRESS: *.64.228.3 조회 수: 319

  나를 만나본 많은 이들이 나를 낙천적이라 평가한다. 항상 즐겁게 살며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낸다고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항상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낙관론자, 긍정주의자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따지자면 오히려 철저한 비관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언제나 최악을 가장 먼저 본다. 작게는 여러 계획들이 실패했을 경우를 본다. 가진 걸 잃게 되었을 경우를 본다. 인생을 바친 결정적 도전이 실패했을 경우를 본다. 믿고 있던 가치와 신념이 잘못된 것이었을 경우를 본다.
 
  이러한 비관주의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많은 이들이 항의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희망을 노래한다. 희망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며, 희망을 가진 이들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희망은 마취와도 같아 눈앞에 실재하는 장애물들을 잊게 만든다. 오로지 낙원만을 바라보며 눈감고 달리는 이들은 반드시 넘어지고, 그제야 희망이라는 마취에서 깨어나게 된다. 아무리 근거가 확실한 희망이었다 할지라도, 희망에 도취되어 눈을 감는 순간, 미래의 주도권은 자신의 손을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나는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최악을 보며 계획한다. 상황은 지금보다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한다.
 
  나의 주장에 낙관론자들은 또다시 항의한다. 실패를 고려해 계획하는 것도 더 커다란 최종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냐고. 그리고 만일 그러한 희망조차 없다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느냐고.
 
  나는 그러한 희망조차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나는 희망대신 이유로 움직인다. 외력으로 잃을 수 있는 나의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최악의 상황을 볼 때, 그 때조차 남아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순수한 나의 존재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나를 움직이는 진정한 이유가 된다.
 
  비관적인 삶이 목표의 달성, 계획의 성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물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희망으로 인한 행복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성공적인 미래를 상상하며 나오는, 상상에 기반을 두는 행복이다. 그러나 희망 대신 진정한 이류를 가진 사람은 그 이유 자체가 행복이기에, 결과를 향해 움직이는 매 순간이 행복하며,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언제나 전혀 새로운 방향을 찾아내 그곳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낙관론자들은 이 문장을 주문처럼 신봉하지만, 그것은 결코 낙관론자들을 위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할 수 있는 근거를, 방법을 가진 비관론자의 선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안 돼, 난 할 수 없어’ 이것은 결코 비관론자의 말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근거 없는 불가능성을 신뢰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은 오히려 ‘어떻게든 잘 되겠지’ 라며 스스로를 마취시키던 낙관론자들의 최후의 말이다.
 
  또한 비관론자들은 모든 것을 의심한다. 사회의 규착, 관습, 통념 그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재평가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변의 물결과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은 주변이 자신에게 우호적일 것이라 기대하기에 쉽게 그것들을 믿는다. 그들은 유행을 쉽게 따르고, 주변의 말에 쉽게 현혹되며, 진정한 자신을 쉽게 잃어버린다.
 
  결국 낙관론은, 희망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일말의 도움을 주지 않을뿐더러, 목표를 넘어서는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없게끔 만든다. 역설적으로 실패를 고려한 이들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비관론자들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방향을, 이유를 아는 이들은 언제나 즐겁게 걸어간다. 때로는 화가 나기도, 때로는 슬플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포용하는 비관주의자의 행복은 지옥에 떨어져도 변치 않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최악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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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

2016.11.18 23:41
*.27.32.79

조회수가 0이길래 댓글 한 수 던지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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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

2016.11.18 23:43
*.27.32.79

아니 생각해보니 이렇게 댓글을 써놓으면 마치

나는 니 글이 뭐 별로 딱히 좋다거나 그런건 모르겠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지루해서 내렸지만은

글 쓴지 2주나 되었는데도 조회수가 0이라 작성에 투고한 열정에 비해 너무 적적한 숫자이니

얄꿏은 동정심 하나 던져주고 자기만족하며 가리라


같은 느낌이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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